(사업 담당자인 임도원 작가님, 류지영 작가님이 인터뷰에 참여. 임도원 작가님은 '임', 류지영 작가님은 '류', 인터뷰 진행팀인 거버넌스는 '거'로 표기)

‌거) SPACE BA 421에 대해 소개 부탁드려요
저희는 예술기획자들이고, 예술가 몇 명이 의기투합해서 세운상가를 거점으로 예술 활동을 해보자는 이야기가 나와 시작했어요. 이야기가 나오고 2주만에 공간을 찾고 계약을 해서 움직이게 되었네요. 활동의 내용은 정해놓고 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자유롭게 제안하고, 프로젝트가 있다면 같이 해볼 사람을 그때그때 모아서 뭉쳤다가 흩어지는 개념으로 움직이고 있어요. 어떤 작가가 하고 싶은 전시가 있으면 기획자가 옆에 붙어 돕는 형태가 될 수도 있고, 거꾸로 어떤 기획자가 프로젝트를 제안하면 작가가 결합할 수도 있죠. 그런 자유로움 안에서 유형이면서 무형인, 무형이면서 유형인 유기적인 형태의 그룹이에요. 이번에 새로운 멤버가 들어오기도 했고 앞으로는 영역을 좀 더 넓혀서 활동하려고 합니다.

‌거) 이번에 진행한 세 가지 프로젝트의 간단한 취지와 류지영 작가님 작업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류)
도시재생과 관련된 프로젝트라는 취지를 살리는 방향에서 준비를 했어요. 저는 세운상가라는 장소가 50년 동안 가지고 왔던 모습을 유지했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있어요. 현재 진행형으로 이어지는, 이제까지 세운상가의 사람들이 삶을 유지해온 흐름을 찾는 마음들이 녹아든 것 같아요. 저는 계단에 사진을 설치하는 작업을 했어요. 백열등, 필라멘트 사진이에요. 세운상가 중에 조명가게군이 크게 있잖아요. 수많은 조명가게들 중에서 한군데를 찍은 거예요. 백열등이라는 게 요즘 많이 쓰지는 않아요. LED나 이런 쪽이 보다 효율이 좋으니까. 백열등은 앤티크한 멋이 있어요. 세운상가가 백열등과 느낌이 비슷해요. 새롭고 깔끔하고 효율적이지는 않지만 나름대로의 멋이 있잖아요. 제가 볼 때 필라멘트라는 것은 그런 에너지가 도는 선이에요. 그리고 기획의도와 연결되어 있는 것이 장소 선정이었는데요. 계단이라는 것이 두 가지 다른 층을 연결해주는 장소다 보니 이곳에 필라멘트가 보이게끔 설치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해서 이 작업을 하게 되었어요. 작품 제목은 ‘열, 결(heat, connection)’이에요.

거) 프로젝트를 진행하시면서 생각하신 점이 있으시다면?
항상 비슷한 문제죠. 미술이 어떤 역할을 했으면 좋겠고 쓸모없이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제 작품이 여기서 큰 역할까지는 못하더라도 어떻게든 자리를 잡았으면 한다는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런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상인분들과도 이야기를 했어요. 그분들의 마음이 열려 계신지도 고민을 했었어요.

‌거) 상인분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은 어떠셨나요?
상인분들 눈치를 많이 봤어요. 물론 이런 작업을 싫어하시는 분들이 계시지만 생각보다 좋게 봐주신 분들도 있었어요. 이런 식으로 조금씩 변한다면 여기 있는 사람과 새로 오는 사람들이 같이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예감이 들었어요.

거) 진행과정에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류) 아무래도 공동작업이고 지원받아서 하는 작업이다 보니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잖아요. 그리고 이 작업 같은 경우는 장소가 제 나름대로는 중요했어요. 원래는 이 건물 내부가 아니라 바깥에 보이는 긴 계단이 있거든요. 지상과 이 건물을 연결하는 계단이요. 지나다니면서도 잘 보이는 그곳에 설치하고 싶었어요. 상가 바깥에 사람들도 지나다니면서 볼 수 있고, 공간의 정체성을 일부 노출시키는 면도 있어서 호기심을 유발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그런데 설치 실험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한 날 공사를 시작하더라고요. 바깥에 설치를 하기 위해서 계단 사이즈를 하나하나 다 쟀거든요. 계단 사이즈가 다 달라서요. 그런데 장소가 바뀌다 보니 만들어놓은 크기가 새로운 장소에 안 맞는 거죠. 그래서 다시 하지 않기 위해서 삐져나온 부분은 자르고, 모자라는 부분은 할 수 없이 진행했어요.

거) 중간에 계획했던 장소와는 달리 다른 곳으로 장소를 옮기셔야 했는데, 장소를 옮기시는 일은 수월히 진행되었나요?
류)
옮기는 거야 어렵지 않았죠. 그런데 주인이 있는 공간이기 때문에 허가절차가 필요해요. 제가 간과하고 있는 부분이었는데 여러 분들이 양해해주셔서 큰 문제 없이 진행되었어요. 어쨌든 상인들이 함께 쓰는 공간이니까 잘 상의드리고 쓰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거) 프로젝트 중 해외작가님들이 참여하신 부분에 대해 알려주세요. 먼저 Max 작가님부터 소개해주세요
임‌)
Max Neuper작가님도 독일 작가분이세요. 그분은 GPS 장소, 빅데이터를 가지고 눈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그 장소에 해당하는 어떤 것을 바라보는 분이에요. 예를 들면 ‘그 동네에는 눈으로는 보이지는 않지만, 새보다 비행기가 더 많이 뜬다’ 라는 건 어떻게 보면 중요한 이슈잖아요. 그런 이슈들을 영상으로 만들어서 숨겨진 이슈가 이 지역에 있었음을 드러내는 거죠. 작품이라는 게 한번 만들어지고 나면 폐기되는 것이 아니라, 포트폴리오로 남아서 어딘가에 쓰이거나 인용되기도 하잖아요. 그리고 그 작품에 나왔던 사실과 상황들이 후대로 이어져 해석되기도 하고요. 예를 들어 피카소의 게르니카(Guernica)를 보면 거기에 어떤 역사성, 상황, 사건 같은 것을 알 수 있죠.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그런 공간의 숨겨진 특성이 세운상가에서 당장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알지 못하는 사이에 발생하고 있는지도 모르죠. 외국 작‌가분들과 저희가 그런 의미로 교류를 했고, 그분들에게 받은 영상작업 두 편을 전시했어요.

거) Eva 작가님에 대해서도 안내 부탁드려요
임)
Eva Keitzmann 작가님은 독일에서 오셨어요. 민주주의, 신자유주의, 도심공동화에 관심이 있으시고요. 어떤 공간이 어떠한 목적으로 생겨났었는데 지금은 그 목적으로 쓰이지 않거나 비어있는 곳들이 있잖아요. 그런 장소에서 퍼포먼스를 하는 걸 영상으로 남겨서 작품으로 진행을 하시고 계세요.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그런 공간들을 찾아서 작품으로 남기고 계신 거죠. 세운상가도 어떻게 보면 점점 비워져 가는 공간이잖아요. 한국으로 오셨을 때 연결이 되어서 이 작업을 함께 하게 되었어요. 이곳에 대한 정보는 저희 디렉터들과 기획자들이 설명을 드렸요. 세운상가의 여러 이슈들이 그분을 통해서 많이 회자될 거라
고 생각을 하고 있어요.

‌거) 프로젝트 중 한글시계는 어떤 계기로 제작하시기로 마음먹으셨나요?
임)
저는 미대에서 조각을 전공했어요. 그래서 학교 다닐 때부터 여기를 방문했지만, 전자 분야는 잘 몰랐어요. 그렇지만 조각을 전공한 탓에 키네틱아트(Kinetic Art), 미디어아트(Media Art) 같은 분야에 관심이 많았죠. 학교 끝나면 을지로부터 세운, 종로까지 해서 모든 상가의 층들을 돌아다니면서 아저씨들께 도움을 받았죠. ‘그거 모르면 하면 안 되지!’ 라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일단 사가지고 가서 이것저것 작업했어요. 세운상가는 인연이 깊고 친숙한 곳이죠. 어릴 때 기억이 있거든요. 대학교 때는 LP판 구하려고도 왔었어요. ‘부활 1집’ 이런 거요. 여기에 대한 기억이 되게 짙고 오래 있어요. 청계천이 뚫리고 여기가 죽어가는 모습도 봤어요. 이 공간에 대한 대안으로 만들어진 동남권 유통센터가 제가 살던 집 바로 옆이에요. 그런 것들 다 보고 자랐죠. 저희가 작업한 한글시계를 만드는 기술은 오픈소스로 풀려있어요. 지금 공유경제라는 게 등장하고 있거든요. 뭔가 사물이 만들어지고 그것이 많이 생산이 되다 보면 처음에는 열 명이 해야 했던 일들이 효율이 좋아져서 두세 명만으로도 할 수 있죠. 그런 맥락에서 요새 코딩 같은 것도 그냥 누구나 따서 할 수 있게 공유되어 있어요. 제가 이 시계를 만드는 방법을 공유받았듯이 제가 만든 이 시계는 세운상가와 공유하고 싶어요. 이 작품은 세운상가라는 곳의 공간과 역사와 관련해 우리가 당면해 있는 많은 문제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 크게 만들어봤어요. 원작자도 자기가 봤던 것 중에 이게 제일 크다며 고맙다는 말씀까지 하시더라고요. 다른 작가들이 제 작업을 보고 흥미를 가질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럼 또 이 기술이 다른 누군가에 의해 쓰일 수 있을 테니까요. 요새 세운상가가 메이커 문화와 관련된 곳으로도 주목받고 있어요. 여기 팹랩서울이 유명하잖아요. 결국 메이커 운동이라는 게 누구나 자기가 원하는 걸 만든다는 정신이고 공유경제와도 관련이 깊다고 생각해요. 한글시계가 세운 메이커 문화를 상징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 장치로 작동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어요.

‌거) 한글시계를 세운상가에 주신다는 표현을 쓰셨는데 한글시계가 어떻게 사용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으신지?
임)
원래는 건물 외벽에 놓고 싶었어요. 한때는 여기가 시내의 중심지였지만 지금은 접근하기 힘들 정도로 오래되고 퀘퀘한 인상이 있잖아요. 그런 맥락에서 바깥쪽에 이걸 놓고 싶었어요. 이 시계의 원리가 재미있는데요. 조그마한 25개의 픽셀이 있는 LCD 액정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여기에 표시를 할 수가 있어요. 외벽에 이걸 설치를 해서 메시지 같은 걸 넣고 싶었거든요. 어둑어둑해져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재미난 기억을 떠올리게 할 수 있는 재미있는 메시지를 넣어서 보여주는 거죠. 또 이 시계가 세운상가에서 공개된 기술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도 대외적으로 보여주고 싶었고요. 오래된 공간 안의 이야기들이 함축되어 있는 작품을 통해 멀리서나마 그런 걸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접하게 만들어주고 싶었어요. 상가는 변하고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 변화에 대처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 같아요. 누구나 당장 눈앞에 딱 떨어지지 않는 이상은 대처하기가 쉽지 않죠. 조선업도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활황이라고 했는데, 지금은 문을 닫는 상황이잖아요. 어쩌면 이 시계를 보고 세운상가의 변화에 대해 누군가는 체감해볼 수도 있을 지 모르겠네요.